30여 년 전, 남과 북의 대표들이 한반도 비핵화를 놓고 머리를 맞댔던 협상장 안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2026년 6월 30일, 통일부가 공개한 3836쪽 분량의 남북회담 문서에 그 생생한 현장이 담겨 있어요.
이번 공개는 2022년 5월 이후 여덟 번째예요. 문서에는 1991년 12월부터 1993년 1월까지, 총 32차례에 걸쳐 진행된 남북 핵 협상의 기록이 담겨 있어요. 당시는 북한의 핵 개발 의혹이 점점 커지던 시기였고, 1994년 1차 북핵 위기 직전이었죠.
협상은 처음부터 순탄하지 않았어요. 1992년 3월, 핵 사찰 방식을 둘러싼 논의가 격해지면서 남측 대표 임동원 당시 통일원 차관은 북측 대표 최우진 외교부 순회대사를 향해 책상을 치며 거친 말을 쏟아냈어요. 북측이 사찰 시한을 명시하지 말자고 버티고, 영변 핵 시설에 대해서도 "조그만 원자로 하나가 전부"라며 모르쇠로 일관하자 감정이 터진 거예요. 북측 대표는 남측의 실효적 사찰 제안을 향해 "강도적인 주장" "깡패의 논리"라고 받아쳤고, 남측 대표의 탈모를 겨냥해 "머리카락 없는데 괜히 모자 안 쓰고 나갔다가 햇볕에 쬐면 건강에 나쁘다"는 말까지 했답니다.
가장 극적인 장면은 1992년 12월 핵통제공동위 제13차 회의에서 나왔어요. 남측 위원장 공로명 당시 외교안보연구원장이 외세 개입 논쟁 중에 참고자료로 김일성과 스탈린의 사진이 실린 남측 신문을 북측에 건넸어요. 6·25 전쟁 이전 두 사람이 만났던 사실을 근거로 제시한 거였죠. 그런데 북측 대표가 자리에서 그 신문을 찢어버렸다가, 찢긴 신문에서 김일성 사진이 드러나자 당황해 사색이 됐다고 해요. 매일경제 보도에 따르면, 이 장면이 그날 협상장의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전했어요.
지금 시점에서 이 기록을 다시 들여다보면, 협상 테이블 위의 언어가 얼마나 외교적 맥락과 동떨어져 있었는지 느껴져요. 막말과 조롱이 오가는 사이에도 양측은 32차례나 자리를 지켰고, 그 결과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라는 문서를 만들어냈죠. 물론 그 선언이 실질적인 효력을 갖지 못했다는 건 이후 역사가 보여주고 있지만요. 이 기록들이 지금의 한반도 상황을 이해하는 데 어떤 참고가 될 수 있을지, 차분히 생각해볼 대목이에요.